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부실 경고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련 대출이 약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하는 등 사실상 돈 흐름마저 멈춰 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향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례가 더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데이터제공업체 트렙을 인용해 10월 첫 2주간 은행권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가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은행권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감소한 것은 2014년 이후 단 두달에 불과하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권 외에서도 동일한 추세가 확인된다. 올 들어 상업용 모기지 담보증권으로 전환된 대출은 282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2011년 이후 최저치다.
은행뿐 아니라 상업용 모기지증권, 비은행 대출기관 등을 아우르는 전체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 역시 2분기 기준 0. 98%(전기 대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튜 앤더슨 트렙 상무는 “1%미만의 증가율”이라며 “2014년1분기(0.74%)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돈 흐름이 멈췄다”고 전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우려는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급증한 재택근무로 사무실 수요가 급감한데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 경기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앞서 워런 버핏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 역시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서 부실 대출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높은 금리와 낮은 임대 수입이 부동산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데이터제공업체 MSCI 리얼에셋에 따르면 3분기 미국 상업용 부동산 구매는 전년 대비 53% 감소한 892억달러에 그쳤다. 같은 기간 파산, 은행 압류, 청산 등으로 부실화된 상업용 부동산 규모는 797억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됐던 2013년 이후 최대 규모다.
특히 최근 몇달 간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신규 대출을 더욱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진단이다. 대부분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단기금리에 연동돼있지만 국채 금리 급등세가 대출기관들의 불안을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미국 최대 임대아파트 및 공간개발사 중 하나인 크로우 홀딩스의 마이클 레비 최고경영자(CEO)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 급등세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면서 “자본시장 불안이 모두를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트딜 시큐어드의 제임스 물펠드 전무는 “유동성은 있다”고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비용이 더 많이 들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지방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대출기관들도 상업용 부동산 부실대출 우려에 직면한 상태다. PNC파이낸셜그룹은 앞서 자사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규모가 2분기 3억5000만달러에서 3분기 7억2300만달러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WSJ는 “많은 대출기관들도 새로운 거래 체결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면서 “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의 파산 이후 상업용 부동산을 경계해온 소규모, 지방은행의 경우 특히 그렇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두드러지게 급감하면서 향후 만기가 도래하는 매물의 디폴트 증가, 신규 건설착공 감소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 분석회사인 닷지 컨스트럭션 네트워크는 올해 상업용 부동산 건설 착공 규모가 작년보다 17%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2009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착공한 6억5000만달러 규모의 드림 라스베가스 프로젝트도 자금 문제로 연초 건설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로펌 킹 앤 스팔팅의 마크 티그펜 글로벌 부동산 책임자는 내년 1분기까지 완료, 개발 예정이던 전국 46개 상업용 부동산 프로젝트 모두가 자금 조달로 인해 보류 중이거나 지연되고 있다면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시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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