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에 이스라엘군 공습 후 곰인형이 바닥에 나뒹글고 있다. [AP] |
안타깝게도 최근 국제 현실은 대규모 국가 간 전쟁발발 가능성 감소에 대한 기대와 생각의 수정을 요구하는 듯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세계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의 미로 속에 갇힌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국제정치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동유럽, 중동, 동북아 지역의 대만해협과 한반도와 함께 4대 화약고 중 두 곳이다. 한 안보전문가의 평가처럼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전개되고 주요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겪는 양상이다.
두 전쟁의 발발과 이로 인한 여파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첫째, 지역 수준이 아니라 잘못 관리될 경우 세계적 수준의 전쟁으로 확전될 위험성이다. 둘째, 지금 시대에 이러한 대규모 전쟁과 공격을 감행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파괴다. 셋째, 군사적으로 우세한 국가에 의한 단기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다른 전쟁의 장기화다. 넷째, 값비싼 첨단 무기 체계와 높은 수준의 군사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소위 ‘스마트 전쟁수행 방식’이 주도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여전히 전통적 전쟁수행 방식과 수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섯째, 두 지역의 문제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군사력 증강과 군비경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주변국들은 국방비와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 국가들의 경우 이전보다 더 높은 군비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의 저서 ‘역사의 교훈’에 따르면 전쟁이 일어난 날짜가 정확히 기록된 것만을 따질 때 인류의 역사 3421년 중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해는 7.8%인 268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록되지 않은 것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수치는 훨씬 적어질 수 있다. 앨빈 토플러에 의하면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2340주 동안 단 3주뿐이다. 미시간대학에서 연구를 위해 수집 축적한 ‘전쟁 상관성(COW)’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1816년부터 2009년까지 인류가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해는 없었다. 약 200년 동안 해마다 어떤 곳에서는 전쟁이 있었다는 말이다.
인류 역사 발전에 따라 더 평화로운 시대로 진일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기록은 최근으로 올수록 전쟁의 빈도가 더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줄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위안이랄까. 전쟁 형태가 국가와 국가 간 대규모 전면 전쟁이 아니라 대부분 내전이었다는 것이 사망자 감소의 원인이다. 그렇다. 테러, 내전 등 물리적 폭력과 재앙이 존재하기는 하나 적어도 국가와 국가 간 대규모 전쟁은 구시대의 산물로 여겨졌다.
인류는 탈냉전과 세계화의 시대, 그리고 협력과 상호의존의 시대를 구가해왔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 간 외교와 교역을 통한 자원 획득과 성장이 전쟁보다 더 유용한 방식으로 여겨졌다. 대규모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과 참상에 대한 반성으로 세계평화와 협력을 추구하고, 국가 간 분쟁 발생 시 중재와 조정을 통한 평화적 해결기구로서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형성과 역할도 컸다.
핵무기와 미사일, 위성, 로봇 등 고도화된 군사과학기술은 전쟁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증가시켜 국가 간 전면전은 치명적인 대가의 지불 없이 어느 한 쪽의 승자게임일 수 없다는 인식의 기반이 됐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보여준 핵무기의 위력과 상대국의 핵 공격 시 핵 보복력으로 상대국도 전멸시키는 상호확증파괴 전략 등의 두려움은 핵보유 강대국일지라도 전면전을 회피하는 논리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의 두 전쟁은 이러한 기대와 인식과 달리 실존하는 ‘검은 백조’처럼 보인다. 국제기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엄포인지 실제 사용할지 알 수 없으나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쳤고, 미국은 핵무기 대 핵무기 대응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핵무기 사용 범위 확대를 암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핵 경쟁자로 인식한 미국은 핵전략도 양과 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성을 적시했다. 인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자 가치라기보다는 압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유럽과 중동의 두 전쟁을 통해 우리 안보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분명히 과거와 다르다. 새로운 해답은 난망하고 미묘할 수밖에 없다. 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웰링턴 장군은 “패전을 제외한 어떤 것도 승전의 슬픔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는 말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분명한 논리다. 그러나 어떠한 대안도 한 측면에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한다. 현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다. 그러나 전쟁을 해도 상관없다는 논리나 이러한 자세가 굴욕적이지 않은 당당한 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수사적 차원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 대화와 협력에 대한 강조와 노력의 여지는 없을까. 다양한 시각과 논리의 통합, 언뜻 상반된 듯한 가치관리, 즉 역설의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안석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인력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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