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준공한 기아 멕시코 공장이 국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와 바로 인접한 멕시코는 최근 ‘니어쇼어링’(특정 소비시장 인접 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1일 멕시코 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이 나라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90억4080만 달러(약 39조1266억 원)로 집계됐다. 연간 FDI가 수년간 증가세를 보이는데, 올해도 작년(363억9600만 달러)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이고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 등 미국 기업들까지 멕시코에 공장을 앞다퉈 짓거나 증설하고 있어서다.
멕시코가 북미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 유럽시장을 타깃으로 동유럽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 역시 헝가리와 폴란드 등을 전초기지 삼아 전체 유럽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니어쇼어링을 통한 글로벌 생산거점을 확대하고,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한국형 글로벌 공급망 전략인 소위 ‘K쇼어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K쇼어링(한국형 글로벌 공급망 전략) |
미중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니어쇼어링’ 등과 같은 공급망 변화를 적극 활용해 한국에 최적화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짜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니어쇼어링 니어(Near)와 쇼어링(Shoring)의 합성어로 미국 유럽 등 특정 시장을 염두에 둔 기업이 인접 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을 의미. |
기아, 북미시장 공략 멕시코에 공장
인건비도 저렴… 직원 절반이 2030
삼성, 中-베트남→멕시코 거점 이동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방문한 기아 멕시코 공장은 미국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과 현지 인력 사정을 충분히 살리고 있었다. 기아 멕시코 법인은 지난달 ‘리오’의 후속작 ‘K3’를 출시했다. 멕시코 자동차 시장도 성장하고 있어 소형인 K3는 현지 전략 모델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 대신 조금 더 큰 ‘K4’를 내년부터 생산하기 위해 라인을 조정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포르테’의 후속 모델이다. 이광구 기아 멕시코법인장은 “멕시코 공장 생산 차량 중 북미 수출 비중은 2018년 56%에서 지난해 68%로 12%포인트 늘었다”며 “북미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춘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공장”이라고 했다.
생산 인력들이 일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차체가 움직일 때 차량 1대분의 부품만 담은 ‘원키트’가 레일을 따라 함께 이동한다. 부품 적재 공간을 줄이고, 작은 부품의 조립을 빠뜨리는 실수도 예방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다만 원키트를 미리 만들어 두는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래서 이 방식은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도 인건비가 싼 현대차 브라질 공장과 기아 중국 3공장 및 멕시코 공장에만 도입돼 있다.
1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1∼8월 미국의 수입국 중 멕시코는 3167억900만 달러(약 426조7000억 원)로 중국(2757억9000만 달러)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멕시코(4591억8000만 달러)는 중국(5756억9000만 달러)에 이은 2위였다.
2018년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시작된 보호무역주의 파고에서 멕시코는 오히려 ‘니어쇼어링’(특정 소비시장 인접 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의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경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본국 회귀를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관세 장벽이 없고, 인건비가 싼 멕시코로 향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그 무렵부터 ‘니어쇼어링’이란 용어도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북미산’에만 전기차 보조금을 주겠다는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되면서 니어쇼어링 추세는 더 빨라졌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멕시코산도 북미 생산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북미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려는 글로벌 기업들로선 인건비가 싼 멕시코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독일 BMW는 올해 들어 멕시코 신공장 건설(증설 포함)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아우디도 멕시코 투자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인 테슬라도 3월 다섯 번째 기가팩토리 건설 부지로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를 지목했다. 테슬라의 발표 이후 닝보쉬성그룹 등 최소 7개의 중국 자동차부품 업체가 멕시코 공장 신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의 ‘멕시코행(行)’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멕시코 케레타로 가전공장과 티후아나 TV공장에 총 5억 달러의 시설 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생산설비 확대로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가전공장 중 면적 기준으로 단숨에 1위로 올라서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멕시코에서의 가전, TV 생산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 북·남미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라모스아리스페에서 전기차용 구동모터코어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인근의 HL만도는 전동화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 증설이 내년 3월 완료된다. 북미 전기차 제조사들의 수요에 맞춘 투자다. 멕시코 경제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23년 8월까지 85개 한국 자동차부품 회사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으로 등록됐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멕시코의 경우 적극적인 니어쇼어링 정책을 통해 미국의 대중 압박에 따른 반사이득을 챙기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각국의 정책 기조를 활용해 글로벌 경영전략을 구상하는 ‘정책 조화’가 현안 과제로 부각된다”고 했다.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멕시코 등 니어쇼어링 수혜국을 적극 활용하되 중국도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페스케리아=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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