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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충전리포트]층간소음·주차난보다 무섭다는 ‘아파트 충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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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서면서 전기차 충전이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기차 보급· 충전 인프라 구축 등 객관적 지표에서는 세계적으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내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선 충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파트 중심의 거주 형태, 초기 정부 주도의 인프라 구축, 보조금 지원에 따른 충전 사업자의 난립 등 우리나라 전기차 충전 시장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고 실사용자가 느끼는 진짜 문제점은 무엇인지 사례 위주로 정리해본다.

#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A씨는 지난 9월 친환경자동차법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다. 전기차 충전(완속 기준)을 하면서 같은 자리에 14시간 이상 주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러 차례 신경을 써왔는데, 어느 날 규정을 어겼다며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신고를 한 것이다. A씨는 며칠 전 새벽, 충전을 마치고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주차장이 꽉 차서 같은 자리에 주차했던 기억이 났다. A씨는 차를 한 번 뺐다가 다시댔다는 사실을 소명하기 위해 증거 사진을 수백 배로 확대해서 제출했다. 과태료 부과 처분은 취소됐지만 앞으로 계속 이웃과 겪을 갈등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B씨는 요즘 충전 스트레스 때문에 전기차를 다시 팔까 고민 중이다. B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2000세대가 넘는 대단지지만 아직 충전기가 5대뿐이다. 매번 충전을 위해 입주민 카톡방에서 순번을 정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밤늦게 충전이 끝난 차주에게 전화해서 차를 빼달라고 얘기하기도 곤혹스럽다. B씨는 입주민들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싫어서, 길을 다니다 곳곳에 충전소가 보이면 잠깐이라도 충전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충전소마다 결제 수단이 제각각인데다 충전 금액도 들쑥날쑥하다. ‘집밥(집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이 아닌 외부에서 충전하는 문제는 B씨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됐다.

전기차 소유주들은 전기차를 사려면 여유로운 ‘집밥’ 또는 ‘회사밥(회사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본인만의 특정한 충전소에서 문제없이 충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기차는 곧 생활 속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스갯소리로 성격유형검사 MBTI 성향상 ‘J(판단형·체계적인 계획을 선호함)’형에 가깝다면 전기차를 구매해선 안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서면서 전기차 충전 관련 분쟁도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66%가 공동주택(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오피스텔 포함)에 거주한다. 단독주택 거주 비율이 높은 해외에선 개인주택 차고에 완속 충전기 하나만 설치해놓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기기를 나눠써야하는 경우 전기차 충전 문제는 층간소음, 주차문제에 이어 또 다른 사회적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2일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시군구청에서 적발된 전기차 충전 방해 건수는 최근 2년 사이 10배로 증가했다. 해당 건수는 2021년까지만 해도 9877건으로 1만건을 넘지 않았으나 2022년에 8만1000건으로 급증, 올해는 7월까지 수치로만 10만건을 넘어섰다. 관련 과태료 부과금액도 지난해 37억원으로 2021년 대비 18배 증가했다.

올해 7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24만3000여대다. 국내 충전기 1기당 2대의 전기차가 사용하는 셈이다. 수치로만 보면 우리나라 전기차 인프라 구축은 빠른 편이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에서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대수는 세계 평균이 10대, 유럽이 13대, 중국이 8대였다. 전기차 보급이 빠른 이들 국가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충전 인프라 구축이 잘 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전기차를 운행하는 차주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이뤄진 초기 인프라 구축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접근성과 편의성, 인구밀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충전기 숫자 늘리기에만 집중했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충전소가 필요한 수도권 아파트 밀집 지역에는 충전기 부족을 호소하는 반면 인구가 적은 지방 공공기관에 설치된 충전소는 텅텅 비어있다.

지역별로 급속·완속 충전기 설치 비율이 다르다는 점도 이용자들의 불만 중 하나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충전기 중 급속 충전기는 11%에 불과하다. 지역에 따라 급속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대수도 많게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인천은 급속 충전기 1대로 31.7대가 나눠쓰는 반면 강원도는 10.2대가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문제는 결제 수단이 일원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조금 지원으로 시장을 키워온 탓에 충전 사업자들이 난립한 결과다. 전기차 차주들은 새로운 충전소에 갈 때마다 새로운 결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부는 지난 9월부터 하나의 카드로 전국 대부분의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전기차 이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결제 수단뿐만 아니라 충전 요금도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한국전력, 서부·동부발전 등 각 발전 사업자마다 공급 단가가 달라 지역별 편차도 커진다. 소비자들은 발전·충전사업자에 따라 가격 차등은 다소 있을 수 있지만 2~3배가 넘는 가격 차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전문가·업계 관계자들은 공공장소 위주로 급속 충전기의 구축을 늘리는 한편 아파트 같은 거주 지역에는 충전 요금이 저렴한 완속 충전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 주차장의 220V 벽 콘센트를 활용하는 이동형 충전방식을 널리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고장 난 충전기 관리를 위한 별도의 예산·인력 배분도 필요하다. 난립하는 전기차 충전 사업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일원화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충전사업자 협회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아 지하 주차장에 주로 충전기를 설치해야 하는 등 화재나 배선에는 최악의 조건”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 까다로운 한국에서 성공 모델을 만든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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