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여전히 강한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최근 장기물 국채 금리 급등으로 금융 여건이 한층 긴축된 데 따른 결정이다. 다만 Fed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동결 후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추가 긴축 가능성도 열어뒀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수순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자칫 인플레이션 재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테이블 위에 ‘인상 카드’를 남겨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Fed는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공개한 정책결정문을 통해 연방기금금리를 기존 5.25~5.5%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에 이어 2연속 동결 결정이다. FOMC는 “긴축된 가계, 기업의 금융 및 신용 여건은 경제활동, 고용,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목표 2%로 되돌리기 위해 적절한 추가적인 정책 강화 범위를 결정할 때 통화정책의 누적된 긴축, 통화정책이 경제활동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시차, 경제 및 금융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동결로 한·미 간 금리 격차는 2%포인트(미 금리 상단 기준)를 유지했다.
최근 국채금리 급등, Fed 동결 결정에 영향 인정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올여름 이후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금융 여건이 한층 긴축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장기 금리 상승, 강달러, 증시 하락세 등 전반적인 금융 상황을 볼 때 향후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급등한) 장기 금리가 차입 금리,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만장일치 동결 배경에 최근 국채 금리 상승 여파가 존재함을 시인한 것이다.
앞서 Fed는 지난 9월 FOMC에서 금리 동결과 동시에 연내 1차례 추가 인상이 뒤따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달 FOMC를 앞두고 월가 안팎에서는 최근 국채 금리 급등세로 인해 Fed의 긴축 필요성이 낮춰졌다는 분석이 잇따랐었다. 이날 공개된 정책결정문에도 기존의 ‘긴축된 가계, 기업의 신용 여건’ 문구에 ‘금융(financial)’ 이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 블리클리 파이낸셜 그룹의 피터 부크바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는 장기 금리 상승이 통화 긴축의 또 다른 형태로 간주돼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동시에 파월 의장은 현 금융 여건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끝낼 만큼 충분히 제약적이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올해 마지막 FOMC인 12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경우 ‘고점’으로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경제, 인플레이션, 고용시장 등 데이터를 다 고려할 것”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금리 인상을 일시 중단한다고 해서 다시 인상이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필요시 언제든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도 강조했다. 시장에서 기대해 온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관건은 여전히 강한 지표다. 지난주 공개된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4.9% 증가해 2021년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날 발표된 노동부의 JOLTS(구인·이직 보고서)에서 9월 구인건수(955만개)는 전월과 월가 전망치를 모두 웃돌면서 노동시장 강세를 확인시켰다. 이번 FOMC 직후 정책결정문 내 경기진단 문구가 기존 ‘견고한(solid) 속도’에서 ‘강한(strong) 속도’로, 일자리 증가 관련 문구가 ‘둔화했다(slowed)’에서 ‘완화됐다(moderated)’로 조정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Fed로선 금리 동결과 동시에 강한 경제지표를 지적하면서 추가 긴축 필요성도 시사한 셈이다.
파월 의장은 “최근 몇 달간 인플레이션 둔화 지표는 2% 목표 달성을 위한 신뢰를 구축하는 시작점일 뿐”이라며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추세 이하의 저성장과 노동시장 과열 완화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파월 매파 발언, 설득력 없어” 시장은 비둘기…12월도 동결 전망
추가 인상 여지를 강조한 파월 의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이번 FOMC를 비둘기(통화완화 선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근원 인플레이션 완화 추세가 이어지고 국채 금리 급등으로 금융 여건이 한층 긴축된 상황에서 Fed가 나설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뱅크레이트의 그렉 맥브라이드 최고재무분석가는 “Fed는 금리 인상 옵션을 열어뒀지만, 최근 몇달간의 장기 금리 상승은 통화 긴축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며 “Fed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성격이 짙은 발언 역시 기대 인플레이션이 뛰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수사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다수다. 헤지펀드 포인트72자산운용의 딘 마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금리 인상을 완전히 배제하는 순간 다음 질문은 ‘금리 인하는 언제 올 것인가’가 되기 때문에 금리 인상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미주지역 수석시장 분석가는 “Fed가 ‘매파적 동결(hawkish hold)’을 시도했으나, 월가에서는 이번 긴축 사이클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믿지 않고 있다”면서 “파월 의장은 매파적 게임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충분한 설득력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파월 의장은 Fed가 9월 점도표를 통해 연내 한차례 추가 인상을 예고한 것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점도표는 결과가 아니라 예측이다.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며 “12월에 새 점도표가 나올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발언은 올해 추가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이토로의 칼리 콕스 애널리스트는 “Fed는 큰 그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상당히 긴축적인 여건에서 무작정 금리를 올리는 것이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도 12월 동결 전망이 강화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오는 12월 FOMC에서 금리를 5.25~5.5%에서 동결할 가능성을 77% 이상 반영 중이다. 전날 68%대에서 더 높아진 수치다. 12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전망은 22%선에 그쳤다. 다수 투자자들은 고금리 장기화 전망과 별개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는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중 오름세를 확대하며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67% 올라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1.05%,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64% 올랐다. 뉴욕채권시장에서 국채 금리는 하락했다. 이날 오전 재무부의 만기별 차입 계획 보고서가 공개된 후 하락세를 이어온 국채 금리는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면서 낙폭을 확대했다. 글로벌 벤치마크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4.74%선으로 내렸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4.95%선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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