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재무실적과 지배구조가 우수한 종목을 선별해 만든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이하 코스닥글로벌)의 기준을 완화했다. 코스닥 기업들이 지배구조 우수등급 취득에 어려움을 겪자 퇴출 조건을 낮춰주기로 한 것이다.
단기간내 지배구조 개선이 쉽지않은 코스닥 시장에서 제도 유지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제도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 유지위해 지배구조 C등급도 OK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최근 코스닥글로벌 지정 취소(퇴출) 요건을 완화했다.
코스닥글로벌은 거래소가 재무실적 및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 지난해 만든 기업지정제도다.
최초 편입을 위한 지배구조 기준은 한국ESG기준원(KCGS)으로부터 기업지배구조 평가 B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이며, 유지 조건도 이와 같았다. 그러나 최근 거래소는 유지 조건을 B등급 이상에서 C등급 이상으로 낮췄다.
하지만 C등급은 지배구조가 우수하다고 보기 어려운 평가 등급이다. KCGS는 지배구조 등급을 S, A+, A, B+, B, C, D 등 총 7단계로 구분한다. S~B+까지는 양호군, B등급 이하는 취약군으로 분류한다.
B등급 이하는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있고, C등급 이하는 ‘크다’고 평가한다. 엄밀히 따지면 B등급도 지배구조가 우수하다고 볼 수 없는데 이보다 요건을 한 단계 더 낮춘 것이다.
코스닥글로벌 유지조건이 C등급 이상이므로, 자연스레 퇴출은 최하위 등급인 D등급만 해당한다.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을 선별한다는 코스닥글로벌 취지와는 다르게 지배구조 요건이 상당수 퇴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퇴출요건을 완화한 이유에 대해 거래소는 제도의 안정성에 방점을 둔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코스닥글로벌에 최초 편입 이후 등급이 하락해 단기간에 퇴출되면 안정적인 제도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초 출범할 때 재무 요건은 진입보다 유지(퇴출)가 더 낮았는데 지배구조 요건은 진입과 유지가 같았다”며 “다른 요건과 균형을 맞춘다는 차원에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시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등급이 떨어질 수 있는데 바로 편출해버리면 지수 구성의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현재 상장지수펀드(ETF) 등 코스닥글로벌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도 있어 안정성에 중점을 두고 변경했다”고 덧붙였다.
요건변경 없었다면, 에코프로비엠도 퇴출
이처럼 거래소가 코스닥글로벌 유지 조건을 완화한 것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던 기준을 조정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 기업들은 거버넌스 관리가 쉽지 않은데 지난해 거래소에서 지배구조 요건을 넣었을 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며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실성을 반영한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KCGS의 기업 평가심사가 더 깐깐해지면서 기업들이 좋은 등급을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B등급 이상 기준에서는 코스닥글로벌 유지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지요건을 완화하지 않았다면 코스닥글로벌은 내년 정기심사에서 대규모 퇴출을 진행해야 했다. 지난 27일 KCGS는 2023년 기준 지배구조 등급을 발표했는데, 현재 코스닥글로벌에 포함된 기업 50개사 중 18개사가 C등급 이하를 받았다.
특히 이 중에는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알테오젠 등 시가총액 상위기업이 있다. 자칫 코스닥글로벌 시총의 30%가 사라지며 제도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현실론에도 불구하고 ‘코스닥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해 도입한 기준을 완화한다는 것은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를 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글로벌을 도입할 때 지배구조 요건을 넣은 점은 코스닥시장 전체적인 질적 성장을 바랐던 것 아니냐”며 “지배구조 커트라인을 낮춘다는 것은 다른 코스닥 중소형 기업에도 지배구조 개선이 의미 없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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