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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살인자가 아니에요”…슈퍼 3인조 강도 사건, 누명쓴 ‘소년들’ 울부짓었지만 [TEN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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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시작을 알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뼈아픈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 ‘1987’(감독 장준환), 2000년 8월 10일 발생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최 군의 이야기를 담은 ‘재심'(감독 김태윤), 7세부터 22세까지 남녀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 아동 학대와 집단 성폭행의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도가니'(감독 황동혁)까지.

세 영화가 가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얼룩지고, 서글픈 우리의 역사이자 다시 써내려 가야 할 사건의 기록이다. 언뜻 들어봤고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사건들은 스크린 위에 새로이 재현되어 관객들을 만나곤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감독들은 왜 영화로 제작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소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그 시간에 멈춰있던 ‘소년들’의 녹슨 시계태엽을 움직이도록 한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들어있던 77세 할머니를 살해하고 현금과 패물 등을 훔쳐 달아나며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당시 19세던 최모 씨와 강모 씨, 20세던 임모 씨 등을 붙잡아 강도치사 혐의로 3~6형의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1999년 11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와 용의자 3명을 검거했음에도 전주지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복역을 마친 세 사람은 2015년 재심을 청구했고 2016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영화 ‘소년들’은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선형적 구조가 아닌 비선형적 구조로 풀어낸다. 1999년, 2000년, 2016년의 시간대를 교차로 배치하며, 새끼줄을 꼬듯 감정을 엮어내는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그 당시 담당 형사와 검사가 후다닥 사건을 해치웠던 것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의 슈퍼 안의 우는 아이와 들이닥친 강도의 이미지가 나열된 오프닝부터 강도 살인사건 혐의가 기소되는 과정을 빠르게 압축한다. 대신 그 자리에 형사 황준철(설경구)를 배치한다. 이미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있는, 황준철의 희끗희끗한 머리와 얼굴은 세월의 시련을 정통으로 맞아 지친 내색이다. 함께 일하던 옛 동료이자 후배 형사 박정규(허성태)는 “16년 전, 살벌했던 눈빛이 아냐”라고 달라진 모습의 황준철을 언급한다.

일명 ‘미친개’라고 불렸던 황준철의 독기는 16년 전, 그날의 기억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번 사건을 물면 놓치지 않았던 황준철은 완주경찰서로 발령받고, 삼례 나라슈퍼사건의 진범을 제보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제보자를 만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들은 황준철은 이때부터 삼례 나라 슈퍼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굳게 걸어 잠근 대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미동조차 없다. 굳게 잠근 문 안에 있는 목격자인 윤미숙(진경)만이 ‘그날’의 진실을 늘어놓을 수 있건만, 그 역시 피해자다.

집단 안에서 단독 행동하면, 반드시 눈엣가시가 될 터. 무엇보다 이미 종결되어 가해자 3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마당에 경찰 내부에서 황준철의 독단적인 행동은 거슬릴 수밖에 없다.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유준상)은 들쑤시고 다니는 황준철의 수사를 제지하며 압력을 가한다. 소년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을 찾아가 의문점을 해결하고, 진범 이재석(서인국) 외 2인을 데리고 온 황준철은 국가 기관의 강력한 은폐 앞에서 무력하게 물러나야만 했다. 폭력 수사 탓에 소년들은 보복이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끝내 그날의 기록을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됐다. 영화 내내 비치는 황준철의 뒷모습은 완주서를 떠나야 했던 후회와 통한이 가득 담겨있다.

하지만 황준철의 진실을 찾겠다는 질긴 마음은 굳게 닫힌 대문을 열게 했다. 사건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였던 윤미숙은 ‘소년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흐릿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억에 후회하며 2016년 재심을 준비한다. 출소 이후에도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소년들은 굳게 닫았던 입을 열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진범이었던 이재석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죗값을 참회하며 재심을 위해 증언한다. 모두가 재판장에서 저마다 단단한 진실의 목소리를 내지만, 그날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반성 없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다.

정지영은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의 낡은 시계태엽을 다시 수리해 재가동시키는 일명 ‘사회파 감독’이다.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중 헤지펀드인 론스트가 외환은행의 지분 51%와 경영권 인수 및 매각 과정을 다루는 ‘블랙머니'(2019), 1985년 9월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된 후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던 실화를 다룬 ‘남영동 1985′(2012), 2007년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의 일명 석궁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2012)까지. 1982년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한 정지영 감독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고발한다.

‘소년들’은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엔딩을 위해, 기나간 시간을 건너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물론 감정적으로 다소 벅찬 감은 지울 수 없다. 16년이라는 소거된 시간 안에서 ‘소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이 생략되어 있어 아쉬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의 외침이 마음 깊은 곳에 와닿지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지영 감독의 ‘소년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생략된 그 시간은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하는 점을 꼬집기 때문이다. 소년들이 갑자기 훌쩍 어른이 되어 관객들 앞에 나타난 것은 그들에게 16년의 세월은 삶이 중단된, 텅 비어버린 틈이기에. ‘소년들’의 외침을 보며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년들의 시간을 앗아간 것은 과연 누구일지를 말이다.

영화 ‘소년들’ 11월 1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15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CP-2023-0073@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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