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미국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투자 축소에 국내 배터리업체와 완성차 업계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배터리 빅3(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미국 업체들과 추진하던 합작사업이 지연 또는 중지되면서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반면, 현대자동차·기아의 경우 이를 기회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2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미국 업체들이 기존의 전기차 투자 계획을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미국 전기차 시장이 수요 둔화 및 고금리, 노조(UAW) 파업 여파 등으로 수익성 감소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인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올해 1∼10월 미국 전기차 시장의 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하락한 47%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 증가율이 지난해 상반기 71%, 작년 전체로는 65%였던 것을 감안하면 둔화폭이 크다.
이에 ‘글로벌 전기차 1위’ 테슬라는 지난 3월 멕시코에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전기차공장 ‘기가팩토리 6’ 착공을 당분간 미루기로 했다. 올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미친 것은 물론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에 따라 투자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포드 역시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20억달러(약 16조2300억원) 규모의 북미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생산설비 투자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2026년까지 예정된 전기차 연 200만대 생산 목표도 사실상 취소하고 하이브리드 생산을 확대하기로 했다.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생산하는 미시간주 공장을 3교대 근무에서 2교대 체제로 바꿔 가동률도 낮추고 있다.
미국 빅3(GM, 포드, 스텔란티스) 가운데 전동화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던 제너럴모터스(GM)도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지만 △미국 미시간주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 1년 연기 △혼다와의 저가 전기차 공동개발 철회 △내년 중반까지 전기차 40만대 생산 계획 철회 등을 발표했다. GM한국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아직은 내부적으로 2025년까지 글로벌 전기차 100만대 생산 목표는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계획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분명 아닌 것 같다”라고 전했다. 내년 실적과 향후 전망 등에 따라 생산 계획이 유동적이라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포드 합작공장 가동 연기된 SK온… LG엔솔·삼성SDI는?
미국의 전기차 생산 및 투자 위축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이다. 해당 업체들과의 합작공장 건설이 늦어지면서 전기차 생산이 둔화될 경우 배터리 업계의 피해는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SK온이다.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3분기 적자를 기록한 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협력사인 포드가 합작공장 가동 연기를 밝혔기 때문이다. 올 3분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는 각각 3분기 역대 최대 영업이익과 매출을 기록했다.
포드가 최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경쟁사의 가격 압박과 전기차 수요 감소 우려로 SK온과 설립한 배터리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 2공장 가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블루오벌SK는 미국 테네시주에 1곳, 켄터키주 2곳 등 3곳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테네시주 공장과 켄터키 1공장은 예정대로 오는 2025년 가동 예정이라는 점.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경우 당장은 북미 합작공장 중단 이슈는 없다. 그러나 향후 전기차 수요 및 투자가 축소될 경우 계획 조정 가능성이 있는 만큼 최근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사는 GM과 설립한 배터리 합작사 ‘얼티엄셀즈’, 스텔란티스와 함께 하는 배터리 법인 ‘스타플러스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북미에 배터리 합작공장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얼티엄셀즈는 현재 3공장이 2025년 목표로 미시간에 건설되고 있으며,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2025년 1분기(1공장)와 2027년 초(2분기) 완공을 목표로 2개의 공장을 짓고 있다. 또한 삼성SDI의 경우 GM과 함께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있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실적 설명회를 통해 “GM의 일부 전기차 출시 계획 지연에도 당사의 올해 및 내년 생산·판매에 대한 영향은 없다”라면서도 “아직 건설단계에 있는 북미 3기 공장은 시장 상황과 고객 수요 변화에 따라 증설 속도를 전략적으로 조절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전기차 구매 심리가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미 대선 영향으로 일부 기업이 전동화 속도를 조정하고 있다”며 “내년 매출 증가율은 올해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위기는 곧 기회’… 현대차그룹, 미 전기차 고삐 더 죈다
현대차그룹은 상황이 다르다. 이번 기회가 미국 및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릴 기회라고 보고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서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2024년형 모델을 출시했다. 전작 대비 트림별 가격을 적게는 2450달러(약 330만원)에서 많게는 4100달러(약 550만원) 대폭 낮춘 것이 눈에 띄는 전략이다. 가장 저렴한 SE 스탠다드 모델은 3만8615달러(약 5243만1447원)로 전작 대비 4100달러 낮게 책정됐다.
전기차 가격을 낮춘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차의 경우 테슬라 등과 달리 미국 정부가 현지 생산 전기차에만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못 받는 만큼 가격을 낮춰 점유율 경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이다. 최근 아이오닉 5·6의 월 리스 가격을 각각 50달러씩 인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리스와 렌터카 등 상업용 차량의 경우 세액공제 대상인 만큼 IRA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가격 전략을 통해 현대차는 지난 3분기 미국 시장에서 2만1638대(제네시스 포함)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는 현대차 전체 완성차 판매 비중의 9.8%에 달하는 기록으로, 지난해 동기 전기차 비중(3.4%)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 계획 역시 차질 없이 진행할 뜻을 밝히며 미국 전기차 시장공략 고삐를 쥘 예정이다. 해당 공장은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강현 현대차 부사장은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미국 공장은 IRA 혜택을 받는 측면에서 의사 결정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인 만큼 2024년 하반기 양산 일정 자체를 늦출 계획은 현재까지 없다”며 “일정을 예정대로 지켜 우리 차를 가지고 경쟁하면서 다른 업체들이 받는 보조금을 우리도 받도록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국 기아 IR 담당 상무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2분기 말 EV3, 내년 3분기 말 EV4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광주 전기차 전용 라인은 연간 생산능력 15만대 수준이 될 것”이라며 기존의 전기차 사업 계획을 유지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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